1784년 12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의 한 프리메이슨 로지에서 독특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28세였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에 입회한 것입니다. 이미 빈의 음악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모차르트는,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게 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상류층의 약 80%가 프리메이슨 회원이었을 정도로 프리메이슨은 사교와 네트워크의 중요한 장이었죠.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왜 프리메이슨에 끌렸을까요? 당시 프리메이슨은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형제애 정신을 바탕으로, 계층이나 출신에 관계없이 서로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공동체였습니다. 독일 작가 고트홀트 레싱이 언급한 것처럼, 프리메이슨의 ‘형제애’는 신이 주신 도움과 보호를 받은 인류의 연대감으로, 모차르트는 이런 사상에 깊이 공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리메이슨의 사상은 계몽주의 시기의 자유로운 사고와 맞닿아 있었고, 이는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볼테르, 하이든, 괴테와 같은 여러 저명인사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이후, 그들의 정신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리메이슨 장례 음악(Maurerische Trauermusik)'은 프리메이슨 형제들을 기리는 곡으로, 그의 깊은 애정이 담긴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는 프리메이슨의 상징과 철학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걸작입니다. 이 오페라는 1791년 빈에서 초연되었으며, 모차르트의 친구이자 프리메이슨 형제였던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대본을 썼습니다. 작품 속에는 프리메이슨 의식이 반영된 요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당시 관객들에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모차르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인간적 가치관으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프리메이슨에서 추구했던 평화, 인류애, 형제애는 그의 삶과 음악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프리메이슨 활동을 통해 그는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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